얼마 전에 새드 무비를 봤다.

이런 저런 전개 속에서 언뜻 언뜻 비치는 비극적 결말에 대한 예고들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영화의 내용은 밝은 것이었다. 하지만 뭐 영화의
제목 자체가 새드 무비이다 보니 모든 에피소드의 결말이 슬픈 것이었다.
이 영화가 어제밤 갑자기 생각난 것은 영화에 대한 감동 때문은 아니었다.
본 지 꽤 지난 이 영화가 갑자기 생각난 것은 순전히 정우성과 임수정 커플의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다.

소방관인 정우성은 화재현장에 갇혀서 마지막을 기다린다. 유독 가스가
차 오르고 화염이 치솟는다. 그리고 정우성은 화재현장에서 애처롭게
간당거리는 CC-TV를 향해 걸어온다. 얼마전에 배운 후에 임수정에게
써먹었다가 핀잔을 들었던 그 수화를 CC-TV를 향해 다시 말한다.

"사랑해. 가슴 만져도 되겠니?"

수화를 할 줄 모르는 정우성이 임수정의 동생에서 그 수화를 배우면서
들은 뜻은 "영원히 사랑할께." 였다. 임수정은 사고가 난 며칠 후에
소방서에서 CC-TV 녹화 비디오를 보고 있고, TV 화면을 어루 만지며
"그래, 나도"라고 말한다. 눈물이 흐른다.

정우성의 마지막 수화는 사실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통하긴 한다.
"사랑해. 지금 널 만지고 싶어. 그런데 그럴 수가 없네." 라고 해석해도
상관 없을 것이고, 그냥 "영원히 사랑할께."라고 해석해도 되겠다.

그런데, 어제밤 갑자기 이 영화가 생각난 것은 두번째 해석이 아니라
첫번째 것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 너무나 그리워서 자신의 눈 앞에
그녀 얼굴을 그리고는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손을 뻗어 그 상상속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실제의 얼굴을 기억해 내고, 실제의 손끝의 감촉을
기억해 내지만, 역시 지금 이 순간에는 만질 수가 없는 아쉬움.

어제밤 갑자기 "새드 무비"가 생각난 것은 그런 아쉬움과 그리움에 대한
공명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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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