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연애편지를 읽다가 들었던 잡생각을 하나 썼었다.
몇시간 전에 화장실에 들고 들어갔다가 이내 몇 페이지가 남지
않았음을 알고는 랩 책상에 앉아서 남은 부분을 다 읽었다.
끝에는 소설가 김훈의 글과 김동리의 글이 있었다.

읽은 책의 수가 부끄러울 따름이어서 다른 작가들은 거의
알지를 못하는데, 김훈의 글은 예전에 "칼의 노래"를 읽었을 때의
깊은 인상 때문에 금방 그 김훈이 그 김훈임을 알았다. 그의 문체에서는
짙은 우울함과 깊이를 알 수 없는 헤매임이 있다. 김훈의 글은
원래 '섬앤섬'이라는 곳에 실렸던 글을 다시 실은 것이라 적혀 있는데
실제로 누군가에게 보냈던 것인지 편지의 형식을 빌어서 쓴 글인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책 뒤에 엮은이가 써 놓은 것과 같이 편지글도
하나의 문학작품임을 인정한다면, 김훈의 또 하나의 글을 어쩌다
읽었음을 즐겁게 생각한다.

마지막 작품(편지도 작품이라고 인정하니까 ^^)은 김동리의 글인데
제목과 형식이 독특하여 기억에 남는다. 제목이 "장편소설: 연애편지"인데
실제로 글은 장편소설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주 짧다. 그리고 도무지
편지라고는 보기 힘든 형식인데, 마치 실제 장편소설의 요약판처럼도
읽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말하기의 형식도 아니고 담백하고
냉정하게 "식"과 "영"의 관계의 파국을 말하고 있다.

엮은이 김다은이 뒤에 실어 놓은 제법 긴 엮은이 후기는 작가들의
편지가 문학작품으로 인정받아야 함에 대한 역설과,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작가들의 편지가 문학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던 배경의 고찰,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 쓰고 있다.

엮은이 김다은의 말과, 그리고 김훈과 김동리의 글을 읽고 나서
편지도 일기도, 또는 어쩌다 끄적거리는 낙서 조차도 하나의 문학 작품이
될 수 있음을 공감하게 된다. 또한 책 처음에 실려 있는 하성란의 글을
읽었을 때의 애틋함을 다시 돌이켜 보아도, 나는 누군가가 무례하게 공개한
(또는 작가의 너그러움으로 애써 공개해준) 남의 편지글을 은밀히 읽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내 어느 글에 누군가가 남겨 놓았던 댓글과 같이
이 시대에는 누구나가 문학작품을 만들어 내는 환경이 되지 않았는가.
그런 면에서라면 남의 글 훔치기(마치 제가 쓴 것인 양)는 단순한 "도의"의
문제가 아닌 "불법"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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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