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의 <칼>.

처음 읽을 때 어렴풋이 짐작했던 대로 결국은 칼 한 자루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숭고하다고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차피 칼이란 그런 종류의 물건이다. 칼 앞에서 얌전 빼면서 잰 체 하는 것은 어차피 어울리지 않았다. 살기등등한 물건. 그런 물건 앞에서는 첨예한 감각이 일순간을 좌우한다. 애초에 동화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이야기. 그렇다면 오히려 어울리는 결말. 그리고 알 수 없는 기호. 그 기호의 의미는 나라도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나, 완전히 아는 것은 도인이거나 작가 자신의 마음을 훔쳐보거나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일듯 하다.

그런데 왠지, <벽오금학도>를 읽을 때의 느낌과 <칼>을 읽을 때의 느낌이 사뭇 비슷하다. 같은 작가의 비슷한 시기의 글이라서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공통된 부분이라면, '세상에는 이성이나 과학으로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분명 존재하는 법이고, 범인들은 결코 그것을 알 수가 없다.'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믿느냐' 혹은 '안 믿느냐' 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고, 그럴만한 연이 있었으냐, 그럴만한 수행을 했느냐에 더 의존한다. 수행의 결과가 아닌 얼치기 믿음 하나로도 구원을 받는다는 어떤 종교와는 다른 종류의 관점이다. 그것이 마음에 든다. 그게 결국은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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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