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버려둔 관계로, 대략 열흘전의 사건.

금요일 밤에 후배랑 휴게실에서 술 먹고 나서 뒷정리를 하는데, 왠지 휴게실 테이블이 삐뚤어진 것이 거슬리는 거다. 그래서 "어이차~" 하고 살짝 들어서 움직이려는데, 이런, 테이블 다리 한 짝이 엄지 발톱을 쳐서 꽤 들렸다. 순간 "아야"하는 외침(!)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민감한 부위라 그런지 피가 꽤나 많이 흐르는 것이 덜컥 겁이 났다. 우리 심약한 사람들은 일단 피를 보면 겁부터 나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응급실엘 가야 한다!'

술도 꽤 취했겠다, 시간도 대략 새벽 2시를 넘긴듯한 시간이니 정상적인 사람은 택시를 불러타고 병원엘 가야할 텐데, 무슨 정신인지 같이 술 먹었던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이제 막 방에 들어간 모양이다.

"야, 나 병원까지 좀 태워줘."

"형, 나 초보에다 술 먹었어요."

-.-;; 정말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택시 불러타고 가까운 성모 병원 응급실로 갔다. 으으으... 포항 성모 병원. 악명 높은... 근데 그날은 생각보다 술이 꽤 취했던 것인지, 평소 같으면 왠만하면 안 갔을 성모병원으로 아무 생각 없이 갔다.

응급실은 붐비진 않았지만 근무자가 몇 안되는지라 좀 정신 없는 상황이다. 내 차례를 기다리는 데에 한참이 걸렸다. 옆 침대에는 어떤 아줌마가 음독하고 실려와 있는 것이 좀 끔찍하기도 하고, 나도 발톱에서 피를 꽤 흘린 터여서 어서 빨리 의사가 봐 줬으면 하는지라 이래 저래 긴장이 되고 짜증도 났다. 한참을 지나서 의사(인턴은 아닌 듯. 아마도 레지)가 와서 보더니 이것 저것 건성으로 묻고, 나는 최대한 이것 저것을 설명하려 하고, 의사는 또 건성 건성 묻고, 나는 또 최대한 설명하려 하고, 또 들으려 하고... 하는 뻔한 싸이클을 조금 돌다가 엑스레이를 찍어 보잔다. 엑스레이? 그걸 왜 찍지?

"엑스레이를 찍어요????(강한의문)"

"혹시 모르니까요...(피곤한목소리)"

그리고 나를 휠체어에 실어서 방사선실로 가서는 왼발 전체적으로 4방 정도, 엄지 발가락을 집중적으로 또 4방 정도(3방이었을지도) 찍는다. 혹시 모르니 찍는 것 치고는 너무 많이 찍는 듯한데, 나야 정신 있는 동안에 응급실에 와 본 게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인지라 일단은 잠자코 있기로 한다. 사실은 잠자코 있을 필요가 없었다. 엑스레이를 무슨 목적으로, 또 왜이리 많이 찍는지 물어봤어야 했다. 다시 또 휠체어에 실려와서 얼마간을 기다린 후 의사가 와서 하는 말은 별 이상은 없는데 "혹시 모르니" 반 기브스를 하자고 한다.

"기브스까지 해요?"

"반 기브스요... 혹시 모르니까요."

병원과 친하지 않다 보니 난 사실 반 기브스가 뭔지 잘 몰랐다. 아마도 엄지 발가락 주위에 뭔가를 두르려는 모양이다...정도만 생각했었지. 내가 보아온 기브스는 대개 팔목에서 팔꿈치 정도, 발목에서 무릎 정도의 규모였는지라 그 때 좀 정신을 차리고 반 기스브라는 시술이 뭔지 잘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의사가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대충 넘어가는 게 아니었다. 잠시 후에 간호사가 뭔가를 잔뜩 들고 온다. 그때라도 낌새가 이상함을, 그리고 반 기브스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어라... 이것 봐라..." 하는 정도에 어찌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간호사가 왼 발 전체와 정강이를 꽤 덮는, 내 생각보다 더 큰 구조물을 두르는 걸 어이 없게 지켜보고 있었다.

"굳는 동안 기다리세요."

하고 간호사가 가 버리고 나서 비로소 제대로 된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발톱 들리고 피가 생각보다 많이 난 관계로 무슨 염증의 가능성이 있을까 걱정돼서 온 건데 발목이라도 상한 모양새의 시술을 받았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좀 있다가 간호사가 기브스 바깥쪽에 대충 신도록 된 병원표 슬리퍼 한짝을 들고 와서 내 발에 채운다. 물어본다.

"근데 정말 기브스까지 해야 되요?"

"(정확히 잘 기억 안 나는데... 혹시 모르니까요의 요지를 담은 답변)"

"발목 각도가 걷기에 적당하지 않은데, 그럼 어떻게 걸어요?"

"목발 하셔야죠."

"...... -.-;;;"

그 때 팽팽한 줄 하나가 끊어졌다. 이 정도까지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주장을 간호사에게 펼친다. 잘 안 먹힌다. 어차피 간호사야 지시대로 할 뿐. 의사와 얘기하란다. 그럼 의사를 불러와라. 의사가 온다. 같은 주장을 다시 펼친다. 피곤한 얼굴의 의사는 또 혹시 모르니까요의 요지를 담은 답변을 하고, 나는 또 이게 과한 시술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피곤한 얼굴의 의사가 피곤해 보이는 지연을 한 후 피곤한 어투로 말한다.

"환자분이 불편하시면 기브스는 풀 수 있어요."

쩝... 그래, 발톱 때문에 기브스에 목발이라니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풀어 주세요."

의사는 또 어딘가로 가고, 간호사는 기브스를 풀고, 잠시 후에 의사가 다시 와서 엄지 발톱 부근에 소독약을 좀 바르더니 간호사에게 뭐라뭐라 지시를 하고 다시 간다. 처방전에 들어가는 약들은 뭔지 묻는다. 진통제와 항생제란다. 간호사가 약간의 붕대로 발가락을 감싸고 그 위에 압박 붕대(라고 부르는 게 그 물건 맞나?)를 감는다. "끝났습니다. 계산하시고, 약은 저 쪽에서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나서 잠시 후에 카운터 가서 계산을 하는데, 허걱 이거 돈이 장난이 아니다. 8만원 쯤을 부른 것 같다. 그래, 내가 발목이라도 접질려서 온 거라면 그 정도 쯤 내 줄 수 있다. 근데 발톱 들린 것 가지고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아무리 응급실이라는 곳이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곳이라지만. 머리가 바삐 돌아가야 하는데 역시나 술을 먹은 상태라 그리 잘 돌질 않는다. 일단 머리에 떠오르는 기스브 얘기부터 한다.

"그 금액에 혹시 기브스 비용도 포함돼 있나요?"

"네."

"-.-;; 저 기브스 안하고 있는데요."

---(여기에서)---

"그건 환자분이 원해서 푸신 거고, 재활용이 안되는 재료라서요."

"제가 무리한 시술인 것 같다고 해서 푼 건데요."

"그래도 일단 재료를 사용했으니 환자분이 부담하셔야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제가 그 시술의 혜택을 받지 않았잖아요."

"그러면 시술하기 전에 얘기를 하셨어야죠."

"나중에라도 의사가 풀어도 된다고 했는데요."

---(여기까지 반복)---

술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하니 그 다람쥐 쳇바퀴를 깰 논리를 짜내지 못한다. 그 와중에 쫌 무리였던 억지 주장 하나는 금새 그 사무원에게 박살나고 다시 쳇바퀴로 돌아간다.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고개를 돌리고 낮게, 그러나 들릴 정도로 시벌시벌하고 나서 다시 쳇바퀴로 돌아간다. 젠장 이 싸이클을 깨야 하는데. 결국 시간이 흐르고 이 사무원이 내가 결국 제대로 지불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무리수를 두기로 한다.

"그건 제가 판단할 것이 아니고..."

"지금 근무하시는 분 중에 제일 윗 분이 누구세요."

사무장이랬나, 과장이랬나, 과장이면 어느 과장인지, 과장이 아니었나, 암튼 그건 그리 중요한게 아니고, 누군가를 댄다.

"그럼 제가 그분하고 직접 얘기하죠."

"잠시만요." 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그리고 나와 그 사무원 간의 쳇바퀴 돌기의 요지를 누군가에게 전한다. 의사였는지 그 "윗 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목소리를 낮춰서 대화 상대가 누군지를 잘 파악하기가 힘들다. 바퀴는 축이 빠진 듯 한데 그 담에는 어디로 튈지 상황 파악이 잘 안된다. 흥분해서 뒤늦게 술기운이 오른 것인지, 술기운이 올라 흥분한 것인지, 그 후에도 카운터 앞에서 기다림과 혼선이 좀 더 있고, 결국 의사를 보기로 한다.

다시 응급실로 들어가서 의사를 본다. 이번엔 좀 싱겁다. 또 좀 어이 없다. 내가 다시 또 기브스가 과도한 시술인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난 그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마음을 굳게 먹는데, 이 의사 몇 마디 별스런 반격도 하지 않고는

"그럼 그건 제가 지불하죠."

하고 역시나 피곤한 얼굴로 피곤한 걸을을 걸어서 문 뒤로 사라진다. 빠직! 뭐지 이 자식은 -.-++ 어이 없는 얼굴로 그 뒷 모습에 대고 말해 본다.

"그걸 왜 선생님이 지불하죠? 병원이 부담해야죠."

하지만 이미 사라진 뒤. -.-;; 간호사들이 남아서 딴청을 피운다. 간호사들에게 또 말한다. 계속 딴청을 피웠던가, 기억도 안 날 정도의 무의미한 답변을 했던가. 나 같은 진상은 빨리 보내버리는 게 낫겠다는 거군. 뭐 어쨌든 일부러 (동시에 정말로 어이가 없기도 해서) 몇 초간 더 어이 없다는 얼굴을 보여주고 카운터로 다시 나온다.

"기브스 비용은 지불하기로 하셨죠?"

"(뭐야?) 아닌데요. 그 치료하신 의사분이 지불하신다는데요."

고개를 쳐박고 날 쳐다보지도 않는다. 기분 나쁘다. 그리고는 약 받아서 택시를 타기까지는 정말 짧은 시간이 걸렸다. 쫌 허무할 정도로. 택시 기사를 상대로 공감대를 형성하려 시도해 본다. 공감대 형성이 정말 쉽다. -.-;; 근데 방에 들어와서 생각해 보니 엑스레이 얘기는 하지도 못했다. -.-;;;; 괘씸한 마음에 포항성모병원 홈페이지를 찾는다. 어디 한 마디 갈겨줄까 하는데, 못 찾겠다. -.-;;;;;;;;; 정말 못 찾겠더라. 담날 정신 있을 때 다시 찾아봐도 어디에 한 마디를 갈겨줘야 하는지 찾질 못하겠더라.

그리고 또 어이 없는 건, 성모병원은 다신 가고 싶지 않아서 다른 병원에 갔는데 거기서는 발톱의 상태를 보더니 정말 대단치 않은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난 엑스레이 여러방을 아직 어쩌지 못했는지라 그거보다는 대단한 상처였길 바랬다.

"염증은 없을까요?"
"없을 거에요."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안 빠지는 경우도 있는데, 왠만하면 발톱이 빠질 거에요."
"빠진다구요? (허걱 그건 걱정할 일 아닌가요.)"
"다시 나요."
"통증은요?"
"조금씩 아플 텐데... (인심 쓰듯이!) 진통제 처방해줄께요."
(진통제도 꼭 먹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렸다.)
"뭐 약이나 그런 건 안 발라도 되나요?"
"안 발라도 되는데... (간호사에게) 그럼 여기 여기 이렇게 이렇게 좀 싸매드려. 네 괜찮을 겁니다."
(붕대로 감은 것도 꼭 필요한 건 아니라능.....뜻???)
"병원은 다시 안와도 되나요?"
"네. 안와도 돼요."

간호사, 거즈 조금에 익히 본 적 있는 압박붕대를 감아준다. 감으면서 얘기해 준다.

"저도 발톱 빠져 본 적 있는데요. 이거 이러다가 너덜너덜해지다가 손으로 떼도 될만큼 되면 떼시면 돼요." -.-;;

사고 당시의 잠깐 동안의 출혈과 통증을 빼면 정말 별거 아닌 상처였나. 성모병원서 날린 5만원이 넘었던 병원비가 아깝다. 붕대는 반나절쯤 지나고 내가 답답해서 풀었다. 통증은 별로 없었는데 그래도 처방받은 약이니 먹기는 먹는다. 그러면서도 계속 아깝다. 또 어이 없다. 이런 걸로 기브스 채우고 목발 짚고 다니라고 하는 성모 병원이라니.



이건 뽀나스. 위에 말한 다른 병원이란 대이동에 있는 "좋은 의사들"이라는 일종의 개인병원 연합체(?) 같은 곳이었는데 거기 가 보니 외과가 안보이더라. 그래서 1층에 있는 약국에서 여긴 외과가 없나요? 했더니 외과는 없는데, 어떤 거죠? 발톱을 들려서요. 아, 그런 거면 외과 말고 여기 피부과(!!!) 잘하니 거기 가셔도 돼요...라는 것이다. 오호... 피부과라니. ㅋㅋ 새로운 사실이었다.

'이런 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대 발표  (0) 2009.08.22
변경  (0) 2009.08.21
발톱 다친 얘기  (2) 2009.08.17
근황  (0) 2009.08.06
트위터  (0) 2009.07.14
  (0) 2009.07.02
Posted by L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