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끔 찔끔 읽느라고 진도가 참으로 더디게 나가던 푸코의 진자가 드디어 벨보가 죽는 장면을 지났다. 근데 이상하다. 예전에 읽을 때에 비해서 벨보의 죽음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화자는 까소봉이어도 이야기의 중심에 가장 가까이 있던 인물은 아마도 벨보일 텐데, 이상타. 가장 중요한 인물이 죽었는데 그게 그냥 그렇게 됐구나 하고 만다. 화자인 까소봉은 벨보의 죽음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지만, 그게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예전에 읽을 때는 벨보의 죽음 직전으로 다시 돌아가 벨보가 죽는 장면을 글자 하나까지 뒤져가면서 다시 돌이켰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왠지 지루하고 재미 없는 풍경 묘사를 인내심을 발휘하여 억지로 읽는 느낌이었다.

음... 아마도 나는 중간에 이야기의 바다에서 길을 잃었던 것 같다. 마누찌오 출판사에 원고를 맡기는 귀신 떨거지들처럼, 단순하고도 중요한 삶의 원리보다 지엽적인 엉뚱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정작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가. 아마도 나는 중간에 진자를 놓친 것 같다. 진자 끝의 추가 그곳에 그 궤도를 그리며 도는 근원을 놓쳤다. 추를 붙들어 맨 줄이 묶여 있는 만고불변의 극점을 잃었다. 내 정신도 표류하고 내 삶도 표류한다. 그러다 닿는 어느 섬에는 외눈박이 거인이 나를 잡아먹으려 기다리고 있겠지. 포도주를 준비하고 거인과 함께 취한다. 깨어나면 돼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내 삶도 잃었고 육신도 잃는다. 내 삶도 내가 아니고, 내 육신도 내가 아니니, 나는 이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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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