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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0 반려의 조건 (2)
나는 원래 평생 함께할 반려라면 사랑스러운 여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어떤 조건들은 사실 그다지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특히나 최근에는 나의 눈 앞에 사랑에 빠질 만한 여자를 만나질 못하다 보니 이것 저것 혼자서 공상을 하게 되는데, 소위 반려자의 조건 같은 것들이다. 이런 여자를 만나면 이런 이런 삶을 살겠지. 또 저런 여자를 만나면 저런 저런 삶을 살겠지. 이런 저런 조건들에 따라서 여자(아직 만나질 못했으니 얼굴 없는 여자일 뿐이다)를 대입하고 미래의 삶을 공상해 보는 것이다. 조건... 그런 걸 따지게 된다.

그런데 방금 말한 조건이라는 것들이 세속적으로 따지는 재산 관계라거나 혈연 관계라거나 미모의 정도라거나 하는 것과는 대체로 거리가 먼데, 그게 아직 내가 철이 들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 같다. 예전부터 중요한 조건 중에 하나로 꼽던 것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인데, 내가 시시 때때로 뜬금없이 뱉어내는 요상한 고사들이나 남들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은 궁금증이나 과연 가능하기나 할 것인지 의심되는 상상 같은 것들을 "이거 뭐야 이상한 놈이네."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길 바랬고, 사회와 인간 관계를 바라보는 대체적인 시각이 비슷하기를 바랬다. 오랫동안 돈이 궁한 삶을 살다 보니 요즘에는 경제적인 성공에 대해서도 예전보다는 많이 관심을 갖게 되긴 했지만 아직도 경제적인 성공은 나에게 순위가 낮은 목표이다. 그러다 보니 2세의 경제적인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한 나의 경제적 능력이라는 것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주변에 가벼운 얘기들을 하는 사람들을 보자면 대화의 주제는 늘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것인가로 귀결되는지라, 적어도 반려로 선택할 사람은 그런 시각을 갖지 않길 바랬다. 미래의 마누라가 내가 돈에 관심이 남들보다 적은 것을 보고 바가지를 긁어 댄다면, 나는 정말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세속적인 결혼의 기준이라는 것은 대체로 현세의 경제적인 부를 쌓아서 2세와 더 멀게는 그 후손들의 부유함을 내포하는 것인데, 나의 기준으로, 당장 돈이 없어 고생(단순히 불편한 정도가 아닌 괴로움이란 뜻이다)하지 않을 정도만 되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가 요즘 소개팅 어쩌구 하면서 만나고 다닌 여자들 중에서 몇이나 이런 생각을 용인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용인하는 수준을 떠나서 나에게 동조해 줄 수 있는 여자가 과연 있는지는 더더욱 모를 일이다.

나는 나의 2세가 돈 같은 것에 집착하는 재수없는 것들이 되지 않고 보다 고상한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야 너무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때문에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서 무지하게 살았지만 나의 2세에게는 좋은 옷과 좋은 집과 좋은 먹을거리보다는 좋은 감성을 물려주고 싶다. 그래서 나의 반려도 그런 좋은 감성을 물려줄 수 있는 소양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좋은 옷 살 돈으로 책  하나를 더 사고, 좋은 집에 살 돈으로 미술 감상을 더 하고, 좋은 것 먹을 돈으로 음악을 더 들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런 데 돈을 많이 쓰면 돈이 돈을 버는 이 사회의 순환 구조에는 편입하지 못할 것 같다. 난 그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는 돈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면 더 좋겠지. 그 정도까지 돈을 벌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그다지 이타적인 인물이 되지 못하는지라 남는 돈으로는 궁색하나마 돈을 불려 볼 궁리를 하게 될 것 같기는 하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돈 걱정, 애들 과외 걱정, 그런 것에는 덜 신경 쓰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면 좋겠다. 돈이야 죽도록 목을 메도 일순간 쪽박을 차는 게 허다하고, 애들이야 아무리 돈을 써도 학자로 대성할 재목이 아니면 비싼 과외 시켜봐야 소용이 없다. (사실 학자로 대성할 재목이면 과외 따위 시켜서 별 도움도 안된다.) 그보다 예술적인 조예(피아노를 기가 막히게 치거나 그림을 신동처럼 그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가 남달랐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음....


그렇다. 나는 철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철이 들 생각도 사실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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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