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08.05.22 서점의 기억
  2. 2007.12.24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 없는 독" (2)
  3. 2007.12.10 작가들의 연애편지 (2)
  4. 2007.12.06 연애와 사랑 (4)
  5. 2007.08.20 읽기에 괴로운 책들 (1)
  6. 2007.01.21 파울로 코엘료 "11분"
  7. 2006.11.27 단테 클럽. 요상한 번역체.
  8. 2006.11.27 The little prince
  9. 2006.11.09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10. 2006.10.31 새책들
  11. 2006.02.13 책책책!!! 돈은???
  12. 2005.09.20 하루끼
  13. 2004.06.25 "장미의 이름" 중에서,
  14. 2003.04.14 반지의 제왕.
아마도 밤을 새게 될 예정. 아마도는 무슨... 확실히겠지. 쿠쿠
실상 따져보면 밤을 샌다고 시간을 많이 벌지는 못한다.
왠지 모르게 시간을 엄청 벌어 놓은 듯한 느낌에
가야 할 길에서 새서 괜히 딴짓도 좀 하게 되고,
새벽녘에는 잠시 눈도 붙이게 되고,
머리도 그다지 맑지 않은 상태다 보니
밤의 힘을 빌어 집중은 하게 될지 몰라도
같은 문장 여러번 읽기 같은 식이 되기 일쑤다.
오늘도 그런 식이다.

잠시 웹서핑 중에 울학교 서점에 관한 얘기를 읽었다.
책은 offline에서 직접 만져보고 몇 페이지 읽어 보고 사야
제대로 사는 거라고 그 사람 써 놨다. 그래서 아쉽다고.
언듯 든 생각에 내 기억 속의 서점이 어떠했는가를 떠올려봤는데,
일단은 차가 다니는 길가에 있다. 요즘 대도시에서 흔히 보는
깊은, 또는 높은 건물들 속의 대형 서점이 아니라
창밖으로, 또는 유리문 밖으로 길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여야 한다. 여름이라면 새책에서 나는 종이 냄새와
바깥에서 불어오는 공기 속의 먼지 냄새가 섞인 기묘한
냄새가 난다. 책 냄새, 가시지 않은 잉크 냄새. 책에서
나는 종이 본연의 냄새보다는 그 종이에 스며들어 있는
화학제품들의 냄새가 난다. 피부에 닿는 물건 중에서
석유화학제품이 들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이니
그런 냄새들은 "새것"이라는 느낌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골판지로 된 종이박스 냄새도 빼 놓을 수가 없겠지.
그리고 사각사각 손을 베일 것같은 종이장을 조심해서
넘기는 소리들. 전화벨이라고는 서점에 설치된 유선전화
소리가 다이고, 전화 목소리도 서점 주인이 거래처와
통화하는 소리가 전부다. 아, 물론 소곤소곤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큰 소리를 내는 사람도
별로 없고, 대부분의 사람은 혼자서 책을 고른다.
반들반들한 종이. 절단면이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탓에 꽤나 위험한 종이들. 실제로 손을 살짝 베이고
종이의 색이 살짝 변하는 것을 목격하고 아연해 하던 기억.
살이 아파오기 시작하는 것보다 책을 훼손했다는 걱정이
더 앞서던 기억. 한참을 시간을 보내고 나서 결국 책을
고르지 못했을 때조차도 왠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은 것 같았던 느낌. 구석에서 찾아낸 약간은 나의
나이에 걸맞지 않은 제목의 책 한두권을 프런트에
내밀 때의 왠지 모를 뿌듯함. 지갑도 없이 가지고 온
돈을 내밀 때의 잠깐의 상실감. 거의 모든 서점에서
나눠주던 코팅된 책갈피. 시라든가 간단한 그림 같은
것들이 가벼운 필체로 각인된 손바닥 반만한, 또는
그것보다 좀더 작았던 책갈피들. 그 책갈피를
새로 산 책의 내지 안쪽 첫페이지 곁에 꽂고 덮을 때의
느낌. 여러권을 살라치면 여러개의 책갈피에서 늘어진
초라한 끈들. 하나씩은 초라해 보여도 여럿일 때에는
자랑삼아 앞에 내밀고 서점을 나서던 느낌.
그리고 빽빽하던 글씨들. 담배갑 하나반 정도의 두께에
가득 찬 글씨들을 보면 읽을 것이 많아졌다는 생각에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던 기억. 많은 책들이 대부분
두꺼웠던 기억.
또 이런 기억.
또 저런 기억.

대충 10년이나 20년 전의 기억들이다.
요즘 서점의 모습은 한참 후에나 떠 오른다.
잘 보이는 진열대에는 각종 자기계발서적 따위나
꽂혀 있고, 종이위에는 화려한 디자인에 풀컬러의
사진이나 그림들이 실려 있고, 정장에 금딱지라도
둘러야 격이 맞을 것 같은 눈부신 고급종이들.
책을 사고 나면 부자가 된 느낌보다는 바가지를
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요즘의 서점은 깔끔한 대형 마트에서 느껴지는 이질감과,
책이라기보다는 껍데기뿐인 장식품을 파는 듯한
배신감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얼마전
학교 서점이 없어진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원래 있던
서점이 없어지고, online 서점의 샘플 전시관이 들어선다.)
별로 아쉽지가 않았다. (아주 쬐끔은 아쉬웠다. ^^ )

내가 기억하고 아쉬워하는 서점들은 21세기가 되면서
벌써 대부분 사라져 버렸으니까.
모퉁이마다 있던 레코드 가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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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bird
TAG 기억, 서점,
오늘 집에서 할일 없이 뒹굴뒹굴하면서 미유키 아줌마의 소설
"이름 없는 독"을 다 읽었다. 이 책은 올 초에 판타스틱이라는
잡지를 정기구독하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책이다. 결국 이 책도
읽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렸군. 하긴 그 동안 이러저러 다른
책들을 찝적거리는 통에 그런 면도 있긴 하지만...

몇월호였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판타스틱에서 이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이야기가 실렸었는데, 그때 이 "이름 없는 독"이라는 소설에 대한
평가는 "잔잔한" 소설이라는 것이었다. 다 읽고 난 나의 소감도 "그래
참 잔잔하군" -.-;;이라는 거였다. 사실 이 소설의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추리소설에 넣는 것이 가장 합당한지라, 추리소설이 잔잔하다는 말은 사실
그다지 좋은 평가는 아니다. 그래도 이 미유키라는 아줌마의 글 솜씨는
꽤 괜찮은 편이어서 읽는 동안 그렇게 심심하거나 지루하지는 않았다.
"범인이 누구냐"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지도 않고, 막상 범인이
밝혀지는 장면이나 중간에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에게 위기가 찾아오는
장면에서도 긴장감은 훨씬 덜한 편이다. 오히려 소설의 분위기가 너무
잔잔하다 보니, 방금 말한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의 위기가 처음 찾아 올
때는 "아아아.. 드디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왠지 추리소설, 내지는 서스펜스 류의 소설을 읽었다기 보다, 좀 긴(좀
많이 길지 ㅋㅋ) 신문 사회면 기사를 읽는 느낌이었다. 고백하자면,
미유키라는 작가의 명성이 상당한 편이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기대를
꽤 했었는데, 솔직히 그 기대에는 좀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생각의 각도를 바꿔서 본다면, 그냥저냥 심심풀이로 읽기에는
괜찮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시간을 떼워야 하는데 막상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게임이나 머리 아픈 논문을 읽는 것이 내키지
않을 때, 그러니까 기차나 버스를 탄다거나 비행기에 갇혀서 몇시간을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한다거나 할 때에는 괜찮다는 말이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소설 중에서는 "스나크 사냥"이라는 소설이
유명한 모양이다. 서평에 보면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중에서 가장 속도감이
높은 소설이라고 한다. 언젠가 총알이 좀 생기면 그 소설을 사서 읽어봐야겠다.
"이름 없는 독"은 생각할 거리는 던져주긴 하지만 템포가 너무 늘어진다.
그래서 뭔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맛있는 양념갈비 1인분을 두시간에
걸쳐서 먹은 그런 느낌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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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연애편지를 읽다가 들었던 잡생각을 하나 썼었다.
몇시간 전에 화장실에 들고 들어갔다가 이내 몇 페이지가 남지
않았음을 알고는 랩 책상에 앉아서 남은 부분을 다 읽었다.
끝에는 소설가 김훈의 글과 김동리의 글이 있었다.

읽은 책의 수가 부끄러울 따름이어서 다른 작가들은 거의
알지를 못하는데, 김훈의 글은 예전에 "칼의 노래"를 읽었을 때의
깊은 인상 때문에 금방 그 김훈이 그 김훈임을 알았다. 그의 문체에서는
짙은 우울함과 깊이를 알 수 없는 헤매임이 있다. 김훈의 글은
원래 '섬앤섬'이라는 곳에 실렸던 글을 다시 실은 것이라 적혀 있는데
실제로 누군가에게 보냈던 것인지 편지의 형식을 빌어서 쓴 글인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책 뒤에 엮은이가 써 놓은 것과 같이 편지글도
하나의 문학작품임을 인정한다면, 김훈의 또 하나의 글을 어쩌다
읽었음을 즐겁게 생각한다.

마지막 작품(편지도 작품이라고 인정하니까 ^^)은 김동리의 글인데
제목과 형식이 독특하여 기억에 남는다. 제목이 "장편소설: 연애편지"인데
실제로 글은 장편소설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주 짧다. 그리고 도무지
편지라고는 보기 힘든 형식인데, 마치 실제 장편소설의 요약판처럼도
읽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말하기의 형식도 아니고 담백하고
냉정하게 "식"과 "영"의 관계의 파국을 말하고 있다.

엮은이 김다은이 뒤에 실어 놓은 제법 긴 엮은이 후기는 작가들의
편지가 문학작품으로 인정받아야 함에 대한 역설과,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작가들의 편지가 문학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던 배경의 고찰,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 쓰고 있다.

엮은이 김다은의 말과, 그리고 김훈과 김동리의 글을 읽고 나서
편지도 일기도, 또는 어쩌다 끄적거리는 낙서 조차도 하나의 문학 작품이
될 수 있음을 공감하게 된다. 또한 책 처음에 실려 있는 하성란의 글을
읽었을 때의 애틋함을 다시 돌이켜 보아도, 나는 누군가가 무례하게 공개한
(또는 작가의 너그러움으로 애써 공개해준) 남의 편지글을 은밀히 읽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내 어느 글에 누군가가 남겨 놓았던 댓글과 같이
이 시대에는 누구나가 문학작품을 만들어 내는 환경이 되지 않았는가.
그런 면에서라면 남의 글 훔치기(마치 제가 쓴 것인 양)는 단순한 "도의"의
문제가 아닌 "불법"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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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추억을 구별하듯이, 나는 연애와 사랑의 경계를 알고 있다. 연애는 정신병적 징후이다. 몸 없는 마음의 질주가 연애다. 몸 없는 마음은 몸이 없어서 오직 상대방의 몸에 집중한다. 상대방의 몸을 광적으로 겨냥할 때, 상대방은 마음 없는 몸이다. 몸 없는 마음과 마음 없는 몸은 결코 만날 수 없다. K, 젊은 날의 내가 그러했다."
 - 시인 이문재 '길 위에서 몸을 생각하다' 중에서, 김다은 엮음 "작가들의 연애편지"에 수록

거의 일년 전 쯤에 산 책 "작가들의 연애편지".

본래 선물용으로 샀던 책인데 그냥 내 책장에 꼽혀 있었다. 일년이 넘도록 주인의 손길 한 번 닿지 않은 것이 불쌍하여 얼마전에 집어 들었는데, 꽤나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일단은 편지 한 편, 한 편이 그리 길지 않아서 침대에서 자기 전이나, 화장실에 볼 일 보러 갔을 때나, 긴 컴파일이 끝나길 기다릴 때나, 세탁기가 빨래를 끝내기를 기다릴 때와 같이 잠깐씩 시간이 날 때 읽기에 좋다. 그리고 편지 하나, 하나가 좋은 글들이다. 작가들이란 원래 남에게 보일 글을 쓰는 사람들이지만, 그런 사람들이 "한사람"을 위해서 쓰는 글은 그 나름대로 산뜻한 맛이 있다. 또한 이 글들은 작가들 자신에 관한 글들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도 아니고, 다른 세계의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게는 더 절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사 놓고도 이리 늦게 손에 잡은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오늘 책을 읽다가 위의 구절을 발견했다. 이문재 시인은 기억은 날 것이고, 추억은 발효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연애는 몸을 잃은 마음이 다른 몸을 탐하는 것이고, 사랑이란 온전한 몸과 마음이 다른 몸과 마음을 만나는 것이라 한다. 가슴이 두근두근할 정도로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다. 시인이 K에게 말했듯이, 나도 이렇게 얘기해야 할 듯하다.

"K, 지난 날의 내가 그러했다."

헌데, 시인이 온전해진 몸과 마음으로 K에게 다시 사랑을 말하려는 것에 비해, 나는 또 다시 K에게 사랑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날은 지난 일로 두어야 할 테다. Carpe diem! 과거에 얽매이지는 않으련다. 현재를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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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체로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본래 책을 속독하는 재주는 없어서 진짜로 "훑어 보겠다"는 생각이
확고한 경우가 아니면 아주 천천히 글자 하나하나를 씹어먹을 듯이
읽기 때문에 읽을 가치가 있을만한 책들을 신중히 고르는 편이기도 하다.

최근에 몇년 동안 틈틈히 하고 있는 일들 중에 하나가, 예전에 제목이나
저자에 대해서 들어는 보았지만 읽어보지 못한 유명한 책들을 읽는 것이다.
이런 식의 책 고르기는 다분히 앞에 말한 나의 느린 독서 속도와도 연관이 있다.
조금 더 얹자면, 나의 귀중한 시간을 별로 유익하지 않은 독서에 보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왠만하면 이미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검증받은 책들이 좋다.

그런데.... 오늘 부로 나는 이러한 나의 책 고르기 전술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원래 발단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이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고, "자기계발"이라는 타이틀보다는 "감동"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택한 책이었고, 결정적으로 책 제목을 너무 많이 들어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써 놓은 서평마다 칭찬 일색. 누군가는 죽기 전에 성경 다음으로
(나에게는 좋지 않은 비유다 ㅋㅋ) 곁에 놓고 싶은 책이랐다나.

하여간에 그 책이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나는 본래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것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노골적으로 써 놓은 것보다는, 이야기를
아름답게 또는 끔찍하게 꾸밈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바를 보다 강한 힘을
실어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 때때로 그 명확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엉뚱한 교훈을 얻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책이란 원래 그래야 하는 물건이다.
그런데...
이 책은 시작부터가 심상치가 않았다. 우리 모두가 사랑해야 하는 "모리"라는 인물.
책 표지에서부터 이 사실은 의심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에서 쓰여진듯한 이 책은, 실은 서구 사회에서 대표적인
미덕으로 여겨질만한 삶의 방식을 대단히 노골적인 방식으로 독자에게 강요하고 있다.

"여기 이 훌륭한 모리의 삶을 보라. 너희는 이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래야
착한 사람이지.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차가운 가슴을 지닌 인생의 패배자일 뿐이야.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말이지. 그래그래, 이 책을 쓰는 나는 돈이 좀 많긴 해.
그렇다고 그걸 부러워 해서는 안돼. 모리를 본받으라고. 내가 아니라."

나는 역겨웠다. 그리고 책을 놓았다.
그리고 집어들고 며칠 동안 들고 다녔던 책이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였다.
이 책의 표지에는 무슨무슨 조사에서 베스트셀러에 뽑혔다고 광고하고 있다.
그리고 서평에서처럼 역시나 "감동적인" 7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돼 있다.
"감동"이라는 것을 빌어 사회가 바라는 획일적인 인간상을 전하려는 이 책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한동안 읽었는데(2/3을 읽었다. 나머지는
"훑어" 보았다.) 그건 순전히 이 책이 취하고 있는 이야기의 방식이었다.
어떤 인생의 패배자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역사상 유명했던 (물론 미국적인
관점의) 위인들을 방문하여 인생의 철학을 받아 온다는 설정이다.
SF도 아닌 소설에서 그런 방식을 취한 터라 어느 정도 호기심이 생겼던 것은
사실인데, 방금전에 드디어 이 책을 포기하고 말았다.

심심하면 등장하는 "하느님의 뜻". 아무리 번역을 "하느님"으로 해놔도
실제로야 개신교의 하나님이겠지. 이것도 나의 심기를 심히 불쾌하게 했지만
책을 읽다가 더 짜증나는 것은, 주인공인 폰더씨는 시종일관 깨우침을 당하고
어리석을 질문을 하고 감동을 받고,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이 방문한 사람이
알 수 없는 (아마도 "하나님"의 뜻으로) 이유로 적어 주게 되는 삶의 좌우명을
감사히 받아 온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 위인들을 바라보는 그 대단히 평면적인
시각에 나는 짜증이 났다.

대단히 미국적인 책이었다. 다시는 저런 책을 읽지 않으리라.

(오타 천지. 귀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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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bird
터미널에서 차시간 기다리다가 집어든 책.
코엘료 아저씨의 "연금술사"를 감명 깊게 읽은 기억도 있고,
제목이나 서문, 표지 등에 쓰여진 글들이 인상적이어서
별 고민 없이 만원 가까이 하는 책값을 지불했다.

그런데...

솔직히 책은 별로였다. 작가가 뭘 말하려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단지 섹스라는 것이 성스러운 것이다? 창녀들을 매도하지 마라?
SM은 좋지 않은 것이니 섹스에 심취 하더라도 그건 하지 마라?
아니면 성매매는 그다지 좋은 직업이 아니다?

책의 마지막이 흔해빠진 영화 같은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장이 몇 장 남지 않았을 때에는, '제발 그런 식으로는 끝내지 말아줘요,
코엘료 아저씨' 하고 애원하고 싶었을 정도였다.

책값은 한 2천원 정도면 딱 맞을 것 같은 느낌. 그나마 책의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의미심장한 문구들이 약간의 점수를 높였던 것 같다.
사실 그 의미심장한 문구들이 소설의 전반에 어떤 영향을 주려는 것인지
의도를 분명히 파악할 수 없으니 많은 점수가 되지는 않았다.
솔직히 따로 떼어내면 어딘가에 적어두고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는
말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단지 멋 부리기가 아니라면 소설에
어떤 식으로든 이바지를 해야 했을 것이다.

얻은 교훈: 유명 작가의 책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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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bird
이왕 제 때 자기에는 글른 상태이니 몇마디만 더 쓰자.

가끔씩 책을 읽다 보면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들이 있다.
처음에야 새로 펴 든 책이니 읽기 시작을 하지만, 이내 내용을
따라가기 위해서 신경을 집중해야만 하게 된다. 내용이 어렵기
때문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책의 내용에 빠져 들어서 집중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 작가(또는 번역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이런 책들의 공통점은 몇문장만 읽어보면
꽤 있어 보이는 문체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처음 폈을 때부터 따지면 거의 3-4개월이 됐고 다시 폈을 때부터
따지면 이제 한달이 된 책이 있는데, 매튜 펄이라는 사람이 쓰고
이미정이라는 사람이 옮긴 "단테 클럽"이다. 한달쯤 전에 새책을
이것 저것 샀을 때 이 책의 2권을 구입했기 때문에, 한번 다시 시도해
보기로 했던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달. 대충 따지면 30페이지쯤
읽었다. 한 번에 10 페이지도 채 읽지 못했기 때문에 한 대여섯 번 쯤
책을 열었을 거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도대체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결국은 짜증을 내면서 책을 덮게 되는 책인데, 역시나 문체 자체를 보면
한껏 멋을 낸 문체다. 좋게 말하면 멋을 냈다는 것이고, 솔직히는
어줍지 않다고 할까. 누군가가 우리 나라 번역자들의 번역 수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도 나는 불쑥 이 책을 들이밀면서 아직도 좋은
번역자를 찾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설명할 것이다. 나조차도
오랜 시간 동안 영어로 되어 있는 문장을 쓰고 읽고 하다보니 -- 물론
전공에 관련된 것들이거나 이러저러한 편지들에 불과하지만 --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괴상한 번역체에 물들어 있는 게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이건 도대체 -.-;;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면
경계해야 할 문체로 단단히 일러줄만한 문장들로 가득차 있다.
뭐, 우리 말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일단 한글로 쓰여 있는 글이다 보니
정신을 집중하면 읽을 수는 있다.

이러한 요상한 번역체들은 나를 다시 중고등학교 시절의 곤욕스러운
시절로 되돌려 보내는 듯하다. 그 시절에 우리가 학교에서 하는 영어
공부라는 것이, 영어 문장을 보면 이걸 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우리 말로 번역을 하는 것이었다.
"It was a picture of a boa constrictor in the act of swallowing an animal."
이라는 문장을 번역한다면,
"그것은 어떤 동물을 삼키는 동작 중인 보아 구렁이의 그림이었다."
라고 할 것이다. 평균적인 우리 나라 고등학생이라도 아마 대부분 저런
식의 순서로 번역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나라면 저렇게 하지 않는다.
"그건 동물 하나를 삼키고 있는 보아 구렁이의 그림이었다."
이런 게 번역의 중요성이다. 순서야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지만
우리 말로 했을 때 어떻게 자연스럽게 만드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이 단테 클럽의 번역자는 "그것은 어떤 동물을 삼키는 동작 중인
보아 구렁이의 그림이었다."라는 식으로 번역을 하고 있다.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중위권 고등학생이 하는 식으로 직역한 듯한 어색한 문장. -.-;;
거기다가 우리말 단어들을 써서 만들어진 문장을 읽으면서도 뜻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영어 문장을 직역하듯이 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다시 읽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초벌 번역이라면 혹시 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초벌 번역만 해서는
책을 안 내는 것이 아닌가? 이건 출판사의 문제일까? 이 책의 출판사는
황금가지라는 곳인데, 판타지 소설들을 많이 냈던 곳으로 알고 있다.
이런 것이 출판사가 번역자에게 보수를 얼마나 쓰는지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는가? 아니면, 번역자가 땡땡이를 친 걸까? 나 같은 사람이
영어 문장을 어색하지 않은 우리 말로 바꾸려면 한 문장을 세네번
읽고 뜻을 음미하고 두세번을 고쳐 써 봐야 할 것이다. 전문 번역가라도
한 번만에 쓸 수는 없을 텐데, 이건 독자들에 대한 직무유기이고
돈 받은 출판사에 대한 불성실한 계약 이행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요상한 번역체를 쓰는 어떤 번역자 때문에
비싼 돈 주고 산 책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이 화가 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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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릴 없는 초조함 때문에 잠에 들지 못하고 결국은 이 시간까지 어린왕자가
지구를 떠나고 Antoine이 마지막 남긴 말까지를 읽었다.

그리고 이 여운을 잠시 즐긴 후에 늘상 하는 일을 하나 했다.
뭔가 생각난 것이 있으면 세상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Googling을 통해서 알아보는 것.

그러다가 어린왕자의 친구인 Manuel이 어린왕자를 대신해서
복잡한 HTML등을 처리해서 이 땅에 다시 어린왕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사이트를 찾았다. http://www.b612.net
어린 왕자는 새로운 소혹성을 찾았다고 한다. 소혹성 B-612는
여전히 B-612일 텐데 또 다른 B-612라니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소혹성의 이름에 붙은 숫자들이야 어른들의 일이니
크게 상관할 바는 아니다.

그리고 아마도 Manuel이 붙여 놓았을 링크에서 어린왕자의
이야기가 세상에 처음 소개된 지 60년을 기념한 책에 대한
소식도 들었다. hard cover다. 역시 책은 hard cover여야 하지.
언젠가 선물용으로 구입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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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가 부러웠다.

얼음보다 더 한 냉혹함, 죽음조차 이겨내는 인내심, 흉내 낼 수 없는 노력,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치밀함,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
세상 모두를 비웃을 수 있는 자신감, 그리고 천부적인 자질...

그것이 살인에 해당하는 것이라도 거침 없이 해 낸다는 점만을 빼고 나면
세상을 성공적으로 -- 물론 세속적인 의미에서 -- 살아가기 위한
모든 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르누이는 거기에 더해서 세속적인 무엇에도 유혹되지 않고
오직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무서움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끊임 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을 가장하고, 때로는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완전히 방치해버리기도 하는 불완전한 성격의 나로서는 감히 비교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또 하나 마음 한 구석이 부르트는 소리를 듣고도 감히 용기를 내서
보듬지 못하는 나를 볼 때, 그르누이, 그는 참으로 부러운 사람이다.
아니, prodigy, 괴물이다. 영원히 동경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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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bird
Micron-Mt9m112-Bayer-non SOC-1.3MP | 1/21sec

단테클럽 2, 작가들의 연애 편지, 연금술사 (일러스트판), 조엘 온 소프트웨어, 향수,
Silmarillion (영어), The little prince (영역)
지난 주말에 하릴 없이 웹을 뒤적거리다가 음반 세개와 위의 책들을 주문했다.
오늘 병원에 갔다가 저녁 먹고 랩에 올라오니 책이 도착해 있었다.
포장을 뜯고, 이 참에 책꽂이 정리도 좀 하고 자리를 찾아 꽂아 넣었다.

작가들의 연애 편지는 제목 그대로인 책인데, 글쓰는 걸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쓴 연애 편지는 꽤 멋지겠다는 생각에서 선물용으로 산 것.

연금술사는 그전부터 읽어보고 싶던 소설인데, 방돌이 책을 빌려 보려고 했더니
이놈아가 집에 있다는 책을 도대체 가져올 생각을 안한다. 그래서 교보문고 사이트를
뒤적거리다가 일러스트판이라고 있길레 주문했다. 사실 그림 보려고 샀다. -.-;;
그림이 얼마나 멋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조엘 온 소프트웨어는 인터넷에서는 대단히 유명한 책이고, 어차피 평생
software engineering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 같아서 교양 삼아
구입했다.

향수 양장판은 솔직히 미니북을 같이 준다는 말에 혹해서 주문했는데 -.-;;;
도착한 것을 보니 손바닥보다 작은 책 안에 향수 한글 번역본의 내용이
빠짐 없이 빼곡히 들어가 있다. 재미 있는 아이디어다. 물론, 일부러 눈 아파가며
미니북을 읽을 리는 없겠지만 소장용이다. ^^ 사진에서 단테클럽 위에 얹혀져
있는 작은 물건이 그 미니북이다.

그리고, Silmarillion과 The little prince. 둘다 영어책인데, Silmarillion은 번역본을
보고 나서 언젠가는 꼭 원서로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던 것이라서 주문했다.
The little prince도 마찬가지인데, 나에게 어린왕자가 없길레 주문하려다가
우리말로 번역된 걸 사느니 그냥 영역본을 샀다. 이건 원래 프랑스 소설이니
원어로 읽어 볼 리는 없는 책이라서 -.-;; 영역본을 샀다. 그냥 우리말 번역이
아닌 다른 나라 말로는 어떻게 읽힐까 궁금했다.
Silmarillion과 The little prince는 역시나 둘다 paperback인데 솔직히 종이질은
별로 좋지 않다. ㅠ.ㅠ 그렇다고 종이질 좋을 것 같은 책을 사려고 했더니
뭔 쓸데 없는 내용들이 들어 있길레 돈도 아낄 겸 딴 거 없이 소설만 제대로
들어가 있을 만한 책을 주문했다. 내용물은 대강 스윽 넘겨 본 게 다라서 읽어봐야
알겠지.



그런데 나를 또 엄습하는 걱정거리. "저걸 또 언제 다 읽는다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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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목요일(금요일이던가??)에 12만원어치 책을 주문해서 오늘 물건을 받았다.
물론, 12만원을 한꺼번에 지르기에는 부담이 되었는데 다행히 적립금 쌓여 있는
것이 5만원 가량 되어서 실제로 7만원 정도만 카드로 결제했다.

그런데, 조금전에 문득 궁금해져서 교보문고에 들어가서 나의 갖고 싶은 책 목록을
엑셀로 다운받아서 판매가를 합쳐보니 무려 31만원이나 된다 -.-;;;

아... 오늘 도착한 로마인 이야기 14권 중에서 이제 겨우 1권의 1/3만을 읽었을
뿐인데, 31만원 어치의 사고 싶은 책 목록을 또 뒤적거리게 된다.
지름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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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천이 싸이홈피에 갔더니 하루끼 얘기가 있더라.
언제 스크랩해 놓은 건지는 잘 안봐서 기억 안 나는데,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던 거 같다.

거기에도 댓글로 써 놨지만, 하루끼의 소설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참 익숙한 정서라는 거였다.
고독이라든가, 쿨하게 사는 것이라든가, 남들이 함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살며, 적당한 불행을 가지고
있고, 기존의 가치에 시큰둥하다든지, 마음을 한번 열면
남들이 하지 못하는 감동을 준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문학 소년/소녀야 말할 것도 없고, 글 한줄 쓰려면 힘들여
머리를 쥐어 짜내야 하는 사람들마저도 사춘기 시절에 한두번쯤은
상상해 봤을 그런 감정 말이다.
낭천이 홈피에 있던 글에는 "이러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이
하루끼를 좋아한다."라고 돼 있었지만, 대체로 정상적인 사춘기를 거친
사람들이라면 어릴 적에 한번쯤은 다 생각해 봤을 만한 것들이다.
단지, 얼마나 잊고 살았는가의 문제일 뿐이겠지.

하루끼 매니아들이 생기는 이유는, 그런 먼지쌓인 익숙한 동경심
자아내는 감정을 제법 잘 써냈다는 것일 것 같다. 서평을 읽어보면
하루끼의 작품 세계가 뛰어나다거나 색다르다거나 반항적이라거나
하는 찬사들을 붙여 놓았지만, 사실 내 생각에는 감수성 예민한
어린 소년 소녀들에게는 보편적인 감성인 것 같다.

이렇게 써 놓고 나니, 문제는 또 다시 한 곳으로 귀결된다.

"얼마나 표현할 줄 아는가"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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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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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랑이라는 병은 괴질(怪疾)이기는 하되 사랑 자체가 곧 치료의 수단이 된다는
이븐 하즘의 정의는 인상적이었다. 이븐 하즘에 따르면, 사랑이 괴질인 까닭은,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치료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통찰인가!
나는 그제서야, 그날 아침 내 눈에 보인 것들이 그렇게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던
까닭을 이해했다. 안치라 사람 바실리오에 따르면 사랑은 눈을 통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는 병이었다. 그에 따르면 이 병에 걸린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들뜨거나,
혼자 있거나, 혼자 있고 싶어하거나 (그날 아침, 나는 얼마나 혼자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던가) 공연한 심술을 부리거나 바로 이 심술 때문에 말수가
적어지거나 한다.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그 대상을 만나지 못할
경우에는, 심한 자기 학대 증세를 보이면서 하루 종일 침상을 떠나지 않는데, 이
상사병 증세가 지나쳐 뇌가 영향을 받게 되면 정신을 잃거나 헛소리를 하게 된다는
대목에서는 겁이 덜컥 났다(그러나 내 경우는, 맑은 정신으로 장서관 미궁을 조사할
정도였으니 그런 중증은 아닐 터였다). 이 병이 악화되면 목숨을 앗을 수도 있다는
대목도 꺼림칙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여자를 생각하다가 육체가 희생되어도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성녀 힐데가르트의 글도 읽었다. 이 성녀의 주장에 따르면, 내가 그날 느꼈던
것과 같은, 여자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느끼게 되는 우울증이야말로 천국에서
경험하는 완벽한 평화의 상태와는 정반대되는 것으로, 중증에 속하는 <암담함과
비참함을 느끼는 우울증Melancholia nigra et amara>은 뱀의 숨결을 맡거나 악마가
틈입하는 데서 생기는 병이었다. 다른 이교도 학자들의 주장도 이와 비슷했다. 아부
바크르 무하마드 이븐 자카리야 아르 라지는 [의학총서Liber con-tinens]에서
상사병으로 인한 우을증을 낭광증(狼狂症)과 동일시하고 있었다. 상사병에 들려
끝없이 우울증을 느끼는 사람은 하는 짓이 늑대와 비슷하다는 그의 증세 묘사는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그에 따르면 상사병의 초기 증세로는 우선 외모에 변화가
오고, 이어서 시력이 약해지고, 눈이 들어가며, 여기에서 조금 더 발전하면 눈물이
마르고, 다음에는 혀가 마르면서 혓바닥에 농포(膿疱)가 생기고, 몸이 말라가면서
시도 때도 없이 갈증을 느끼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병자는 대낮에도 침대에 누워
이불로 얼굴을 가리게 되며, 얼굴과 목에 개의 이빨 자국이 나타나다가 결국은
늑대처럼 묘지를 어슬렁거리게 된다.

아비체나의 인용문은 나에게, 나 자신이 까발려진 듯한 느낌을 안겼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상사병은 이성인 상대의 얼굴, 태도, 행동에 대한 연속적인 상상에서
비롯된 편집증적(偏執症的) 우울증이다. 아비체나는 흡사 나를 관찰하고 상사병을
그렇게 정의한 것 같았다. 상사병은 처음에는 병이 아니나, 사랑의 갈증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에는 강박적인 병으로 이행하여(나의 갈증은... 하느님 용서하소서...
채워졌는데도 나는 왜 그런 증세를 느꼈던 것일까? 전날 밤의 죄 많은 춘사(春思)는
그런대로 만족한 상태에서 끝나지 않았던가? 이것이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라면 대체
만족스러운 것이란 어떤 것이란 말인가), 이윽고 눈꺼풀이 떨리고,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까닭없이 울고 웃게 되고, 급기야는 심장의 박동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실제로 내 맥박도 빨라지고 있었다. 이 글을 읽을 동안 내 호흡은 거의
멎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비체나는 또 갈레노스가 고안한 상사병
환자의 진단 방법을 소개하고 있었다. 즉,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사랑의 대상이 될 만한 이성의 이름을 부르면 특정인의 이름에서 맥박이 빨라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글을 읽다 말고, 사부님이 불쑥 튀어 들어와 내 손목을 잡고 내
맥을 짚을까 봐 더럭 겁이 났다. 참으로 창피한 일이었다.

아비체나는, 상사병의 유일한 치료 수단은 상사병의 대상과의 결합이라고 했다.
아비체나는, 똑똑한 사람이기는 하나 역시 물정을 모르는 이교도였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든, 주위의 사려 깊은 주선을 통해서든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성별(聖別)되어 그런 병에는 걸릴 수도 없고 걸려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설사
걸린다고 해도 대상과의 결합을 통하여 이 병을 치료할 수는 더욱 없는 가련한
베네딕트 회 수련사의 팔자를 전혀 고려에 넣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팔자가 나 같은 사람은 고려에 넣고 있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 경우에 대한 대비는 있었다. 즉 마지막 대증 요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온탕욕(溫湯浴)이 그것이었다.

하면... 베렝가리오는 죽은 아델모에 대한 상사병을 치료하러 욕장에 들어갔던
것일까? 인간은 동성(同性)에 대해서도 상사병에 걸리는 것일까? 이거야말로 짐승의
음욕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내가 그 여자와 함께 밤을 보냈던 것도 짐승의
음욕에 결주어질 만한 탐욕 때문이었던가? 아니어야 한다... 그렇게 달콤한 사랑이
짐승의 음욕일 리 없다... 아니다, 아드소여, 네가 틀린 것이다. 그날 밤의 춘사는
악마가 보낸 환상이다. 따라서 짐승의 음욕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죄를 짓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죄를 짓고 있는 너 아드소여...

아비체나의 치료법은 계속되어 있었다. 두 번째 방법은, 소시적에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힌 적이 있는, 늙은 여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치료의
한 방법일 수는 있겠지만 나에게는 수도원에서 늙은 여자(젊은 여자는 물론이고)를
찾아낼 길 없었다. 그렇다면 수도사를 하나 붙들고 통사정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대체 누구에게? 이 사라센 인이 권하는 마지막 치료법, 즉 상사병에 걸린 사람에게
계집종 여럿을 붙여 난교(亂交)하게 한다는 치료법은 나 같은 수도자에게는
천부당만부당했다. 결국 수도자가 상사병에 걸릴 경우에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다.
나는, 세베리노에게 약초를 부탁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까지 해보았다.

그런데 빌라노바 사람 아르날도의 글에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아르날도라면,
사부님이 극찬하던 분이었다. 아르날도에 따르면, 상사병이란 체액의 분비와 정신의
고양(高揚)이 지나친 데서 생기는 병이었다. 이로 인해 혈액(생식의 종자를
지어내는)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종자, 즉 <성욕의 상황complexio venerea>을
조성하고, 결합의 욕망을 강화시킴으로써 몸의 각 기관의 습도와 온도를 높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엔체팔루스>, 즉 뇌의 중앙에 있는 공동(空洞)
뒷부분은, 오감이 받아들인 무분별한 자극을 수용하고 그 자극을 평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래서 오감이 감지한, 대상에 대한 욕망이 지나치게 되는 경우, 이
평가 기준이 위축되면서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의 허상만 밝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슬픈 일이 기쁜 일로 보이게 되는 등의 판단 착오가 생기면서 육체와 정신이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육체와 정신이 불길에 휩싸이게 되는 까닭은, 기쁨을 느끼는
순간 온몸의 열기가 몸의 표면으로 치솟기 때문이다(절망하는 순간에는 이 열기가
몸 깊숙이 스며들기 때문에 한기를 느낀다). 그러니까 아르날도의 치료법에 따르면,
사랑하는 대상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확신과 희망을 싹을 잘라 버리면 생각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면 나의 병은 치료된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대상을 다시 만날 가능성이, 혹은 희망이 나에게는 거의,
혹은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만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취할 수
없고, 취한다고 하더라도 수습할 수 없고, 수습한다고 하더라도 내 곁에 둘 수
없었으니, 이는 수도에 전념해야 하는 나의 수련사 처지와, 내 집안이 나에게 지운
의무의 굴레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구원을 받은 것이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서책을 덮었다.
바로 그 순간에 사부님이 그 방으로 들어왔다.
------------------------------------------------------------------------------
베네딕트회 수련사 아드소는 해법을 찾았으나 나는 찾지 못했다.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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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에서 나온,
반지의 제왕 양장본 3권 세트를 샀습니다.
네.... 충동 구매가 맞아요.

그런데.. 저걸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요? T.T
책 도착한 것을 보니, 처음에 드는 생각이
"저거 1권이라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였습니다. 으으으... 언제쯤 되면 좀 한가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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